카드놀이로 치매를 이겼다고? -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스마트폰을 반으로 잘라보세요. 아마 다시는 손쓸 수 없이 망가지겠죠?
- 뇌는 절반을 잘라도 완벽히 동작할 수 있습니다. -
목차치매요? 제가 걸렸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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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요? 제가 걸렸었다고요?
나이가 들수록 무서워지는 병이 있습니다.
바로 치매, 알츠하이머입니다.
이 놀랍고도 끔찍한 병은, 사람을 어린아이로 바꿔놓습니다.
가장 최근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거죠.
그렇게 몸만 큰, 아니 늙은. 어린이가 됩니다.
나를 나로, 너를 너로 정의하는 주체는 무엇일까요?
무엇이 나를 '나답게' 만들고, 나를 나라고 확신하게 만들까요?
책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에서는 기억이 자아를 결정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하면, 뇌의 신경망이 물리적으로 변형됩니다.
이런 변형은 계속, 계속 이루어지지요.
결국.. 그렇게 경험으로써 변형되고 바뀌는 '무언가'.
그것에 기록된 내용물이 우리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매일 일기를 씁니다. '경험', '기억', '감정', '체험'이라는 이름으로요.
일기장에는 어느덧 수두룩하게 우리의 마음이 적혀있어요.
X년 X월 X일 어디서 뭘 했다, 즐거웠다, 행복했다.
뇌는 이런 일기장을 가득가득 저장하는 도서관입니다.
치매는 이런 도서관의 책장, 일기, 일기장 속 글자를 지우는 병입니다.
단순히 어딘가로 못 찾게 숨기는 걸 넘어서,
정말로 물리적으로 훼손시키는 병입니다.
노트르담의 수녀님들은, 매우 나이가 많습니다.
정확히 따지자면 이 연구에 참여한 수녀들이 나이가 많은 거지만요.
75세에서 107세 사이의 수녀 678명을 조사한 연구입니다.
이들은 모두 정기적으로 인지 기능 검사를 받고, 병원 진료를 다녔습니다.
대단한 점은, 사망 후 뇌를 기증하는데 모두 동의했다는 거죠.
이들의 사망 후 뇌를 부검한 결과, 끔찍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바로 일부 수녀들이 알츠하이머에 걸렸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거든요.
치매는 그들의 뇌들 잔뜩 헤집어놓았습니다. 엉망으로요.
그런데 놀라운 점은, 생전 치매에 걸린 수녀들은 전혀 인지력이 저하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들은 죽는 날까지 지적이었고, 맡은 일을 수행했으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밤에는 간단한 카드 게임도 하고, 집단 토론까지 했죠.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책에서는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를 '뇌 가소성'으로 설명합니다.
"뇌는 평생토록 변화합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요."
미친 적응력의 뇌
인간의 뇌는 정말 미친 적응력을 보여줍니다.
어느 정도냐면, 무려 뇌를 절반이나 제거했는데도 멀쩡한 사람이 있을 정도로요.
매슈라는 아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네, 분홍색 살점이 절반씩이나 없는 사람이요.
라스무센 뇌염이라는 이름도 어려운 뇌질환을 앓았습니다.
매슈는 반구절제술을 받은 후,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네, 아기가 되었죠.
매슈는 모든 학습을 잊고, 내내 아기처럼 울었습니다. 부모님이 염려하던 최악의 상황이었죠.
하지만 매일 물리치료와 언어치료를 받은 결과 서서히 다시 언어를 익힐 수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아기의 학습처럼, 한 단어, 그다음에는 두 단어를 익혀나갔죠.
절제술 석 달 뒤, 매슈는 적절한 발달단계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니까, 뇌가 절반 없지만 나이에 맞는 정상적인 행동을 했다는 거죠.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매슈는 식당에서 일합니다.
전화 응대, 고객 서비스, 서빙 등 필요한 모든 업무를 다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의 머리 안쪽에 절반이 비어있다는 걸 짐작도 하지 못합니다.
스마트폰을 절반 자르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동작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면, 회로가 전부 끊겨있으니까요.
뇌를 절반 자르면 어떻게 될까요?
동작하지 않을 거라고 하고 싶지만, 우리는 사례를 하나 봤습니다.
남아있는 뇌 절반이 역동적으로 바뀌어, 사라진 반쪽의 기능을 같이 수행하였습니다.
이런 경이적인 특징을 '뇌 가소성'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어떤 상황에도 적응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
사람의 뇌는 '미완성'으로 시작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태어난다는 거죠.
저는 어렸을 때 자전거 타기를 배운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대로 중심도 잡지 못하고 넘어지고, 손잡이를 잡기도 전에 넘어지는 일의 연속이었죠.
하지만 그런 수도 없는 '넘어짐'을 통해 어느덧 '중심 잡는 법'을 익혔습니다.
얼핏 보면 타당한 일이지만, 이건 사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에요.
왜냐하면 저는 태어나면서 '자전거 타기'의 유전자를 받은 적은 없거든요.
위대한 자연은 '자전거'라는 도구가 나올 것을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바퀴가 만들어졌고... 우연히 어떻게 자동차가 나왔고... 그런 거죠.
그냥 우연히 자전거가 만들어졌고, 우린 그걸 활용할 능력을 만들 수 있었을 뿐이에요.
한마디로, 우리는 '자전거 타기', '스케이트보드', '돌 던지기' 등의 능력을 타고나진 않았다는 거죠.
그냥, 살면서 배운 거예요. 네, 이게 핵심입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신체를 조정하여,
뇌에 '자전거 타기' 습관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어! 왼쪽으로 기울어지네? 균형 맞춰!'라고, 뇌에 새겨진 것이죠.
이런 '새겨짐'을 우리 뇌는 자동적으로 수행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걸을 수 있는 아이는 없을 겁니다.
말할 수 있는 아이는 전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시행착오'라는,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학습을 통해 걷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젓가락질을 연습한 적이 있으시겠죠?
부모님이 젓가락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따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잘 안 됩니다. 뇌에 '젓가락질'이라는 동작 수행 설명서는 없었으니까요.
'손가락은 이 정도 굽히는구나', '손목은 살짝 꺾는구나.'
물건을 놓치는 일을 반복함으로써, '물건을 안 놓치는 가능성'을 찾아나갑니다.
우리는 결국 너무나 많은 연습을 통해, 젓가락질에 신경을 쓰지 않고도 음식을 집을 수 있게 되지요.
"뇌는 경험으로써 스스로를 다듬어,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
즉, 미완성이 완성으로 향해간다는 뜻이다."
안녕하세요, 프로 뉴비입니다.
우리가 접하는 모든 종류의 활동은, 경험으로써 우리의 뇌를 개변시킵니다.
왜냐하면 뇌는 예측 기계거든요.
뇌는 우리의 상황을 예측하는 것에 모든 힘을 씁니다.
'차가 어떤 속도로, 어떤 방향으로 다가오고 있다.' -> '?? 왜 여기로 오는 거야?'
'저 사람은 왜 나한테 연락했을까? 설마 빚보증?' -> '그냥 반가워서 연락했구나!'
뇌는 예측이 틀렸으면 언제라도 예측을 수정해서 '다음 예측'을 대비합니다.
그렇게 예측의 정교함이 나날이 늘어가는 거죠.
프로 축구 선수와 지금 갓 축구를 시작한 뉴비 선수.
둘이 한 경기장에 서서 축구 경기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뇌가 더 바쁠까요?
프로 축구 선수가 실력이 더 좋고, 그러려면 생각을 많이 할 테니 뇌가 바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신 분들, 추리는 훌륭하셨으나 아쉽습니다.
정답은 뉴비 선수의 뇌가 훨씬 더 격렬하게 움직입니다.
인간의 뇌는 세상에 대한 특정한 '모델'을 만듭니다.
표현이 조금 어렵지만, 사실 간단한 겁니다.
누군가 술을 먹고 자동차 운전석에 탑승했다면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탑승자는 그냥 자기 물건을 찾으러 간 것일 수 있지만, 우리는 음주운전을 먼저 의심합니다.
왜냐하면 '운전석에 만취자가 탑승한 차는 음주운전 위험이 있다'라는 세상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모델'이죠. 세상의 경험으로써 학습한 고정관념의 일종입니다.
축구를 오래 한 사람은, 축구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뇌는 그 고정관념을 토대로 예측을 시도합니다.
'저기서 볼을 패스하면, 수비수가 붙으면서 반응하겠지. 그러면 나는 그 허점을 파고들면 돼.'
그런데 우리 측 사이드가 패스하려던 찰나 갑자기 공을 빼앗겼습니다!
'빼앗겼으면 일단 방어에 집중하자. 하지만 상대가 깊숙이 침투할 테니 그만큼 빈 공간이 많아질 거야.'
이런 식으로, 프로 선수는 외부 선수들이라는 나 이외의 것들에 대응해서 본인의 행동을 결정합니다.
여기서 '나 이외의 것'은 곧 환경, 세계이지요.
경험 많은 프로는 세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예측이 정확하기에 잡스럽고 군더더기가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뉴비는 경험이 없죠! 세계를 인식할 충분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볼을 차야 할 것 같아!'
??? : '??? 왜? 왜 저기서??'
이렇게 경험 없는 초짜 티를 내고야 맙니다.
이는 '축구'라는 세계에 적응하지 못했기에, 예측의 기반이 되는 정보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정보가 부족하기에 예측이 정확할 수가 없지요.
수도 없는 연습을 통해 정보를 계속 쌓아나가는 것, 우리는 그것을 학습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학습의 시간 동안, 뉴비의 뇌는 불타오르듯이 변합니다.
실시간으로 정보를 저장하고, 기억을 인출하고, 행동을 시행착오합니다.
뇌의 신경망은 아주 빠른 속도로 건설되고 있습니다.
결국, 신경망이 산길에서 마을길, 그냥 도로에서 하이패스 고속도로로 변하는 순간이 옵니다.
처음에는 느렸던 상황판단이, 이제는 눈 감고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것 같아요.
이렇게 정보 전달이 아주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도로는 한없이 단단해지는 그때.
뉴비는 프로가 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세계로부터 정보를 받고, 세계에 영향을 미치며, 다시 정보를 받는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알아간다."
건강하게 살려면 은퇴하지 마라
우리는 이제 노르트담의 수녀님들이 알츠하이머를 앓고도 멀쩡했던 이유를 말할 수 있습니다.
알츠하이머로 뇌가 '물리적으로' 무너지던 그때마다,
수녀님들은 뇌를 '물리적으로' 연결했던 겁니다.
다리가 몇 개가 부서지든, 도로가 몇 개가 터져나가든 상관없습니다.
그것보다 더 많이 정신력을 써서, 뉴런들의 회로를 이어 붙이면 되는 겁니다.
위의 뉴비는 '축구'라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뇌의 신경망을 건설했습니다.
인간의 뇌는 예측 기계이고, 이는 예측이 정확하다면 바꿀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매번 그냥 하던 것처럼, 똑같은 재료로 똑같은 방식의 요리를 내놓는 거죠.
왜냐면 매번 맛있었으니까요. 그냥 그런 거죠.
수녀님들은 매번 그날의 과제가 있었습니다. 잡담하며 떠들 친구도 있었죠.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이 있었고, 정신적으로 활발한 생활을 거쳤습니다.
네, 우리는 생각을 반대로 뒤집어야 합니다.
'치매에 걸렸는데도 매일매일 활발하게 활동하셨었네?'가 아니라,
'그렇게 활발히 머리를 쓰셨으니 치매에도 멀쩡하셨구나!'가 됩니다.
정신적으로 활발하다는 건, 새로운 경험을 자주 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매일 달라지는 하루가 매번 새롭고 감미로워서 뇌에 새로운 길을 내는 거죠.
카드놀이라는 언제나 즐거운, 그래서 새로운 경험을 하면, 그 경험에 맞는 길이 만들어집니다.
알츠하이머가 이 길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으면 뭐 합니까?
돌고 돌아서라도 카드놀이를 하러 다시 길을 만드는데 말이에요.
결국 수녀님들은 평생 은퇴하지 않은 덕분에, 건강한 자신을 이어나갔습니다.
인간은 그 자신이 먹는 것이 되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네가 먹는 것이 곧 너 자신이 된다.'
저자, 데이비드 이글먼은 이 말을 비틀어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네가 소화하는 정보 자체가 네가 된다.'
우리는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정보로 변화합니다.
자전거를 탈 줄 알게 되고, 축구를 배우며, 엑셀, ppt도 전부 배워서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우리는 '나'가 되어갑니다.
결코 몰랐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일방통행의 길을 매일 걷고 있지요.
제가 적은 글을 읽기 전의 여러분과 읽은 후의 여러분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환경을 기록하는 장치가 되었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들의 인식과 사고관에 큰 충격을 받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르신들의 생각에 충격을 받습니다. 나와 다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분 역시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직접 겪은 일을 모두 경험으로써 저장하는,
과거로부터 변해온 자신입니다.
우리도 세월로 인해 어느 한순간에 굳어져, 다음 젊은이들에게 충격을 주게 될 날이 오겠지요.
살아온 모든 일을 물리적으로 기록하는 뇌 덕분에 말입니다.
오늘은 오늘뿐이기에 소중하고, 내일은 내일이기에 기대되는 법입니다.
삶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종료되는 일방향의 삶은 언제나 무섭지만,
그 길의 끝에는 분명 우리가 걸어왔던 모든 여정이 별처럼 반짝일 겁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그렇게 달콤할 수 없다던 니체의 말처럼,
우리는 그렇게 모두 각자의 세계가 되어갑니다.
출처 - Snowdon DA; Nun Study. Healthy aging and dementia: findings from the Nun Study. Ann Intern Med. 2003 Sep 2;139(5 Pt 2):450-4. doi: 10.7326/0003-4819-139-5_part_2-200309021-00014. PMID: 12965975. - 건강한 노화와 치매
이번 책은 데이비드 이글먼의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입니다.
전문적인 뇌과학을 다루고 있으나, 작가 특유의 재치 있는 설명으로 즐겁게 읽었습니다.
'뇌 가소성'이라는 생멸변화를 통해 다른 의문점들을 해소하는 역량에 감탄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우리는 결국 세계와 분리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쓰고, 그로부터 배우고, 배운 것을 다시 작성합니다.
'저'와 '저 아닌 것'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저'를 알아가죠.
'너'가 있기에 우리는 '나'가 될 수 있습니다. 빛과 그림자처럼요.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손님들과 저를 위해 즐겁게 책을 굽겠습니다.
- 제과점장 린곰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