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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자기계발

4000권의 책과 200명의 성공 요약 - [보도 섀퍼의 이기는 습관]

by 제과점장 린곰 2024. 1. 30.

잘 살고 싶다면 반드시 이 말을 되새기세요. 

"나라면 나 같은 사람을 상사로 두고 싶겠는가?"

본문 20챕터, -하이퍼포머가 되어라-

 

목차


오~렌지! 오렌! 아~싸 너부터!

좋아하는 일을 안하면 망하는 진짜 이유

업적작

어이! 쇼-부다!


 


오~렌지!  오렌지!  아~싸 너부터!

 

잠재력 말고 잠이랑 재력을 따로 주세요

 

이런! 현대인의 애환을 잘 담아낸 귀여운 글귀입니다.

푹 쉴 수 있는 잠과 걱정 없이 쓸 수 있는 재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생은 바라는 만큼만 주는 법입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나면서부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다고 들었습니다.

누구에게요? 바로 부모님에게요.

어릴 적 철없는 소리로 "난 우주비행사가 될 거야!"라고 말하던 째깐이.

그런 저희를 부모님은 "그러렴, 얘야."라며 인자한 웃음으로 답하셨지요.

 

그래서 우리는 실제로 우주비행사가 되었나요?
당연하게도,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주비행사가 되기를 그렇게까지 바라지 않았거든요.

그냥 한 때의 충동적인 기분이었을 뿐이에요. 

멀리서 우주비행사를 보고,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을 뿐이죠.

이렇게 멀리서 바라만 보는 사람에게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삶을 변화시키려면 딱 2가지만 있으면 됩니다.

바로 목표와 실행입니다.

'나는 무엇을 하겠다!', '나는 무엇이 되겠다!'라고 외친 후,

그걸 그대로 이행하면 됩니다. 너무 간단하죠?

 

ㅎㅎㅎ 간단할 리가요.

그렇게 간단했으면 다이어트가 왜 만인의 숙제이겠습니까.

그렇게 쉬웠으면 취업과 시험 합격은 왜 그토록 사람을 옭아매겠습니까.

목표와 실행은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입니다. 

목표는 사실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아요. 그냥 말하면 되니까.

물론 나를 잘 알고, 나에게 맞는 적절한 수준의 목표를 설정하며, 최종적인 나의 모습이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지 충분한 숙고와 검토를 거친 후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정해야 하지만, 일단은 그냥 정하면 그게 뭐든 '목표'가 됩니다.

 

그 어떤 비현실적인 것도 일단 말하면 '목표'에요.

근데 우린 그런 사람들을 뭐라 불렀죠?

'미친놈아; 그게 말이 됨?'

네, 미친놈이라는 딱 좋은 단어가 있었네요.

'인간을 달로 쏘아 올리겠다!'라고 말했던 미친놈이 있었죠.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라고 외쳤던 미친놈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진짜 정말 중요한 거 알려드릴까요?

이 미친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의 목표를 실행하는 정신 나간 짓을 했기에 인류가 발전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왜 정해둔 목표를 이루는 것에 실패할까요?

의지가 부족해서? 노력? 목표가 너무 높아서? 운이 안 따라서?

물론 상황이 억울할 때도 있습니다. 

아 진짜 오늘은 책 읽으려고 했는데. 갑작스럽게 친구가 연락하네요.

친구의 연락만 아니었으면 정말 책 읽었을 텐데. 너무 아깝네요.

 

하하. 하나도 안 아깝습니다.

그런 의지력으로는 친구가 아닌 다른 핑계만 만들어낼 뿐입니다.

저의 리뷰 전편 [다산의 마지막 질문]에서 정말 중요한 말이 나오죠.

"인간은 자신의 행동으로써 자신을 증명합니다."
"스스로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할 수 있었는데', '내가 노력만 하면 다 돼', '하필이면 운이 안 좋아서'

아니, 아니, 아니.. 삶은 변명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한번 되물어보세요. 

"나는 내 삶에서 무엇을 얻기 위해 사는가?"

"아니면 '무엇을 얻을 수도 있었는데'라고 변명하기 위해 사는가?"

 

물론 저도 압니다. 살다 보면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큰 상황이 온다는 것을.

제가 아무리 강해 봤자 산사태를 막을 순 없죠.

태풍이고 해일이고 몰려오는데 제가 어떻게 휩쓸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갑작스러운 누군가의 죽음, 이별, 배신 등의 크나큰 상처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알고 있죠.

'내 힘으로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을 맞닥뜨리면 인간은 불쾌해집니다.

스트레스와 좌절, 압박감을 받죠. 이것은 본성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택할 수 있는 건, 바로 스스로의 태도입니다.

위의 모든 상황과 악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목표를 위해 노력한다는 집념.

'더 세게 때려 보든가. 날 죽이지 못한다면 난 더 강해질 뿐이야.'라는 마인드.

우리가 바람을 바꿀 수는 없어도, 돛을 다르게 펼 수는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

 

인생을 사는데 어떻게 순풍만 불기를 바라겠습니까.

여름이 있으면 겨울이 있고, 태양이 뜬다면 언젠가 먹구름도 올 텐데.

'내게는 역풍이 안 오겠지!'라는 만용을 가지고 있으면 곧 시련으로 배우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역풍을 맞는 상황에서도, 나의 목표에 책임을 지는 태도를 보이는 겁니다.

 

인간의 마지막 자유는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지를 결정하는 자유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자유는 '책임'에서 옵니다. 

내 인생을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자유이자, 그렇게 해야만 하는 책임.

외부 상황에 불평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 날씨, 천재지변, 이별과 죽음은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나 이외의 것'은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내 탓이 아니다, 남 탓이다, 운 탓이다, 상황 탓이다.' 계속 그렇게 도망치는 사람들은,

선택이라는 인간의 마지막 자유를 팔아치운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알량한 피해의식과 내 탓이 아니라는 저열한 만족감과 교환해서요.

어떤 삶을 살지는 스스로의 자유로 선택합니다.

그리고 모든 선택은 스스로의 책임이지요.

 

책 본문에서는 이런 일화가 나옵니다.

한 스승이 제자에게 도시에 가서 오렌지를 팔아오라고 시켰다.
저녁이 다 되어 돌아온 제자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도시 사람들이 오렌지가 너무 비싸다고 투덜대더군요. 한 개도 못 팔았습니다."
스승이 말했다. "자네는 오렌지만큼 영리하지도, 현명하지도 못하군."
그리고 물었다. "이 오렌지를 힘껏 누르면 무엇이 나오겠는가?"
"당연히 오렌지즙이 나오겠죠."
"그렇지. 내가 망치로 오렌지를 치면 무엇이 나오는가?"
"똑같이 오렌지즙이 나오죠."
"당나귀가 오렌지를 밟으면? 아니면 내가 오렌지를 맛있게 먹으면?"
"자꾸 물어 뭐 합니까. 오렌지즙이 흘러나오겠죠."
스승이 웃으며 말했다. "어떤 일을 당하든 오렌지는 항상 자기 안에 있는 것으로 답을 하네.
하지만 자네는 다른 사람들 탓을 하고 있군.
자신의 안에 있는 것으로 답할 기회를 언제나 버리고 말이야.
기회를 그들에게 내어준 줄도 모르고 상황 탓,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있구먼."

 

이해를 돕기 위해 약간의 각색을 거쳤습니다.

어떤 좋고 나쁜 상황에서도 자신의 내면 안에 있는 것으로 답하는 것.

'핑계 대는 삶'이 정말로 우리의 인생이라면, 너무 시시하지 않겠습니까.

따지자면 여물지도 못한 오렌지인 셈이지요.

시든, 달든, 뭐 어떻습니까. 우리는 '스스로의 정답'을 만들었는데.

 

"오렌지는 언제나 자기 안에 있는 것으로 답을 한다."

 


 

좋아하는 일을 안 하면 망하는 진짜 이유

 

'좋아하는 일을 해라'

하도 들은 말이죠?

좋아하는 일은 재밌고, 금방 잘할 수 있고, 내적 보상과 연계되어 자아 효능감이 높아지고...

뭐 가지각색의 이유가 많습니다.

사실 근데 그런 이유만으로 현재의 '생업'을 버리고 '좋아하는 일'에 뛰어드는 것은...

너무나 변수가 큰 도박입니다. 그렇죠?

 

하지만 여러분,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100% 망합니다.

위에서 말한 별로 와닿지도 않는 시시한 이유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떤 일을 하든, 그것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미쳐 못 사는 사람들과 별로 흥미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경쟁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누가 뭐래도 본인의 인생입니다. 뭐라 하는 사람이 대신 살아주나요?

'이거 했다가 망하면 어떻게 해요'

망하면... 네. 망한 거죠. 뭐 어떡합니까.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냐고요?

 

여러분. 정말 중요한 사실은 미래는 불가해의 영역이란 겁니다.

누구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습니다.

새옹지마란 사자성어가 있죠.

옛날 중국의 북쪽 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 노인이 기르던 말이 멀리 달아나 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인은 "오히려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라고 말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한 필의 준마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축하하자 노인은 "도리어 화가 될는지 누가 알겠소?"라고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말타기를 좋아하는 노인의 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가 떨어졌다.
결국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져 고통스러워했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였는데 노인은 "이것이 또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어느 날 전쟁이 일어나 군인을 징집하게 되었다.
마을 젊은이들은 전쟁터로 착출 되어 나가 싸워야 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있었기 때문에 전쟁에 징집되지 않았다.

 

'이게 복이 될지 흉이 될지 누가 알겠소?'

미래가 바로 이 꼴입니다.

'미국에서 3년간 바리스타 공부하고 돌아온 친구의 추어탕집 오픈' 같은 거죠.

인생은 그 누구도 앞을 예측할 수 없죠.

그러니 성공과 실패를 예단하는 일은 무의미합니다.

 

일은 사람이 꾸미지만 성패는 하늘이 정한다는 말처럼,

승리와 패배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결과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지루하게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며 살 건지, 그렇지 않을 건지.

 

성공하면 어떻고 실패하면 뭐 어떻습니까.

성공하면 또 새 도전을 찾으면 되고,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면 되는 겁니다.

 

먹고사는 데 급급한 사람은 그냥 먹고살만한 삶을 삽니다.

삶은 바란 것 이상의 성취를 주지 않습니다.

우연이 겹쳐 본래 '내 것이 아닌' 무언가를 얻게 되었다면.

맞지 않는 그릇에 억지로 물을 부은 것과 마찬가지죠.

곧 넘칠 겁니다.

 

중요한 것은 잠깐의 성취고 행운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만큼의 행운을 포용할 수 있는가?

나는 어느 정도 깊이의 그릇인가?

이런 질문들이 훨씬 중요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행운은 불행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불행은 그냥 버텨내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행운이든 불행이든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입니다.

상황은 그냥 주어지는 겁니다. 행운이고 불행이고 이름 붙일 필요가 없죠.

다만 나의 능력이 되면 운수 좋은 날인 거고, 능력이 부족하면 불행으로 바뀌는 겁니다.

 

그러니 결정 내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승리와 패배는 인간이 정할 수 있는 결과가 아니니까요.

행운과 불행이 주어진다는 상황 역시 인간이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필요한 것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겠지요.

그것이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을 키우는 방법입니다.

 

사실 만족한다면 그대로 쭉 삶을 살아내시면 됩니다.

현재의 충실함과 만족을 즐기시고, 나중에 불만을 가질 때 다시 도전하면 됩니다.

그런데 만약 삶이 불만족스러운데, 안정감을 버리지 못해서 결정을 주저하고 있는 거라면.

아래의 문장으로 이번 단락을 마치겠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삶을 견뎌내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위험이라는 사실을 대부분은 모른다."

 


 

업적작

 

여러분, 모두 게임하시나요?

저는 한때 마인크래프트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흙을 맨손으로 캐고, 돌도 맨손으로 캐는 우리의 초인 스티브를 좋아했죠!

마인크래프트를 플레이하다 보면, 우리의 행동에 보상을 준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죠.

우리가 처음 철을 제련하면 '철이 철철 넘쳐'라는 업적을 달성했다고 알려줍니다.

처음 지옥에 가면 '포화 속으로'라는 업적을 이뤘다고 말해주죠.

이런 '업적 시스템'은 플레이어의 동기를 유발하는 매우 좋은 요소입니다.

 

그런데 '업적'이란 개념을 조금 뜯어보면, 매우 특이한 점이 하나 있어요.

바로 내가 행동한 것이 결과로써 나타난다는 점이죠.

물을 마셨으면 '물 섭취'라는 업적이 이뤄집니다.

요리를 해서 망쳤으면 '탄소 화합물 생성'이란 업적이 쌓아지죠.

 

우리의 인생 데이터에 이런 업적들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상대가 기분 나쁘게 대했는데도 웃으며 말하기' 업적.

'기말고사 벼락치기 12시간 컷' 업적.

'엄마 아빠한테 사랑한다고 얘기하기' 업적.

여기서 깨달으셨나요?

인생은 업적을 쌓아나가는 게임과 닮았다는 사실을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삶으로 업적을 만들어나갑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업적이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행동했고, 그래서 실제로 무엇을 이뤄냈다'는 업적이죠.

성공한 사람이든, 실패한 사람이든 모두 나름의 업적이 있습니다.

'나는 술을 많이 마셨어, 그래서 알코올 중독에 걸렸어.'라는 업적.

'나는 책을 많이 읽었어, 그래서 더욱 똑똑해진 것 같아'라는 업적.

 

이런 업적은 삶에 대하는 태도로써 증명하는 겁니다.

나의 행동의 모든 합이 내가 됩니다.

간단히 말해서, 내가 쌓은 업적이 곧 나라는 소리죠.

 

이게 참 정직해요.

내가 행동하지 않은 무언가가 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제가 매번 사람들에게 반말하고 침 찍찍 뱉고 거들먹거리면서 다닌다면요.

제가 과연 '성실하고 착한'이라는 업적을 쌓는 걸까요?

아니겠죠. 아닐 겁니다. 그보다는 '저잣거리 3류 엑스트라' 업적이 적당 할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삶을 시작할 때 대리석 한 덩이와 연장 하나를 선물 받는다.'
'우리는 평생 동안 대리석을 손도 대지 않은 상태로 가지고 다닐 수도 있고,
연장을 사용해 멋진 조각품으로 다듬어낼 수도 있다.'
- [갈매기의 꿈] 저자, 리처드 바크

 

'나는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그래서 지금 어떤 업적을 쌓고 있는가?'

먼저 스스로 쌓고 싶은 명확한 업적을 규정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면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그런 업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런 사람'이 됩니다.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십니까?

스스로 어떤 업적을 쌓아 올리고 싶으신가요?

우리는 우리의 태도와 행동으로써 세상에 나를 증명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세상아!'라고 인생으로 외치고 사라지는 삶이죠.

우리가 세상에 외치는 말이 부디 그 자신이 원하는 말이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런 삶을 살아내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그 자신의 인생으로 스스로 무엇이었는지를 말한다."

 


 

어이! 쇼-부다!

 

살다 보면 정말 여러 가지 일이 있습니다.

믿었던 누군가에게 배신당하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사고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게 삶이죠.

이런 불안과 어두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불행을 어찌해야 할까요?

 

근데 생각해 보면, 사실 저런 불행은 이미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왜 왔냐고 한탄해 봐야 그 사실이 변하지는 않죠.

돌에 걸려 넘어지면 왜 그 자리에 돌이 있냐고 찡찡대봐야,

돌의 위치나 내가 넘어졌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사고는 당한 것이고, 결국은 어떻게 할 건데?

이것이 핵심이죠.

 

책에서는 말합니다.

'신의 테스트를 통과하라'라고.

갑작스러운 슬픔과 절망, 이별은 이 세상 사람이 모두 겪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행한 사건은 신이 인간을 테스트하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례가 나옵니다.

에디슨이 67세였을 때 그의 연구실이 화재로 전소되었다.
피해액만 당시 200만 달러를 웃돌았는데,
그보다 더 막대한 피해는 그가 이룬 모든 연구 자료들이 손상됐다는 것이다.
이때 에디슨은 '내가 저질렀던 모든 오류가 지금 불타고 있소.
정말 감사하게도 이제 완전히 새로 시작할 수 있게 됐다오.'라고 여겼다.
이게 바로 절망과 불행의 테스트를 통과하는 사람의 답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기에 각자에게 주어지는 문제가 다릅니다.

문제가 다르기에 난이도도, 답도 전부 다르지요.

'내 문제가 왜 너 문제보다 어려운 건데!'라고 말하는 게 인생에서 통하지는 않습니다.

모두 평등하다면, 모두의 문제가 다 똑같다면 왜 '너'와 '나'가 갈리겠습니까?

 

'나'를 '너'와 구분짓는 건 우리의 문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분되기에 문제가 다른 것일 수도 있죠.

무엇이 먼저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문제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다른 건 당연한 겁니다.

누구는 배신을, 누구는 죽음을, 누구는 사고를 당합니다.

그런 큰 시련에서 스스로의 답을 해야 하죠.

'남'의 대답을 '내' 시련에 그대로 가져다 붙이면 그게 '내' 인생입니까?

수학 시험에서 나온 정답을 영어 시험지에 적어놓는 거랑 다른 게 없습니다.

'남'의 대답을 '내' 시련에 활용하기에 그게 '내' 인생이 되는 겁니다.

 

불행과 슬픔이 찾아오면 그래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시련 속에서도 나를 찾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와, 이런 극한 상황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평소와 같구나!'

'음, 이렇게 와 보니까 알겠다. 난 이런 사람이 아니었구나.'

이렇게 시련을 스스로를 재단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는 우리의 인생으로 세상에 외치는 겁니다.

'난 이렇게 살았다!'라고. 평생을 걸쳐 대답을 조각하는 거죠.

 

그러니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시련이 찾아오면 그것과 승부해 보세요.

그 시련 속에서도 자신의 대답을 유지할 수 있으면,

곧 더욱 큰 고난이 올 겁니다.

그것을 이기면 더더욱 큰 난관이 오겠죠.

왜냐하면 문제는 이긴 순간 더는 그것으로 문제가 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대답을 조각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대답보다 날카로운 문제가 필요합니다.

 

'하하하! 그게 정말 너라고? 그럴 것 같으냐! 그럼 이것도 견뎌내 보시지!'

이렇게 매번 찾아와 주는 고난과 시련, 문제와 역경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오... 이것도 견뎌냈단 말인가? 좋다! 인정하지. 난 이만 물러가보마.'

라고 돌려세울 수 있는 놈들이지 않습니까.

 

'그놈은 우리 중에서 최약체였지.. 이것도 이길 수 있을까?'

라며 또 다른 놈이 오면, 똑같이 이기면 됩니다.

시련과의 승부에서 이긴 사람만이 스스로의 존재를 관철할 수 있는 특권을 얻습니다.

 

불행에도 무너지지 않는 것. 부서지지 않는 것.

깨지고 깎인 끝에 나온 나의 단단함이 나의 인생을 대신 말해줍니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사람은 평생 스스로를 조각한다. 어떻게 살았고, 죽었는지를."


이번 책은 세계적인 코치, 보도 섀퍼의 [보도 섀퍼의 이기는 습관]입니다.

30가지나 되는 훌륭한 습관과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단위의 과업까지.

그야말로 '멘탈 코치'의 능력을 볼 수 있는 훌륭한 책이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위너들은 어떤 습관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가깝습니다만,

저는 책의 '습관을 따라야 하는 이유'나 '왜 그런 습관이 만들어졌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렇기에 본문에는 저의 생각과 철학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책의 지혜와 인사이트를 잘 녹여낸 삶의 태도 리뷰라고 보셔도 사실 무방합니다.

훌륭한 지혜가 녹아있는 책을 여러분들께도 소개시켜드리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엄청!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손님들과, 특히 저를 위해 맛있게 책을 굽겠습니다.

- 제과점장 린곰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