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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자기계발

인간관계의 필수 스킬 - [말센스]

by 제과점장 린곰 2024. 2. 5.

먼저 이것부터 확실하게 하고 갑시다.

"당신은 말을 잘하고 싶나요, 대화를 잘하고 싶나요?"

책 내용 요약, "말을 잘하는 능력과 대화를 잘하는 능력은 다르다."

 

목차

 

대화하기 (??)

주인공이 되고 싶었습니다

투머치 토커


 


말과 대화하기 (??)

 

이번 챕터의 제목은 제 마음에 쏙 드네요!흐히히히!! :D

 

흠흠. 요새 이런 개그가 재밌더라구요...

거두절미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우리는 '말을 잘한다'에 환상이 있습니다. 

이야, 어쩜 저리 유창하고 조리 있게 의견을 딱딱 내놓을까요.

와우.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완전한 언변! 정말 부럽습니다.

 

저도 그런 능력을 갖고 싶었어요.

그래서 친구와 대화할 때도 여러 가지 책에서 나온 조언을 실천해 봤습니다.

그렇게 몇 주를 해보다가, 어느 친구한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너 나랑 대화할 생각이 있는 거야?"

뼈아팠습니다.

 

【말하기】와 【대화하기】.

언뜻 보면 똑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 둘은 '말'이라는 거대한 공통분모가 있을 뿐, 세부적으로는 완전히 다릅니다.

단순히 무엇을 어떻게 말할지 생각해 입을 벌려 성대를 진동시키고 소리를 내는 것과,

상대의 반응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서 숙고하고 다시 의사 표현하는 것만큼의 차이입니다.

 

말하기Speech란, 언어를 사용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라는 대상이 아닌, '표현'한다는 거죠.

표현은 대상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그냥 하면 나타나는 겁니다.

상대가 보기 싫든, 듣기 싫든, 상관없습니다.

심지어 상대가 없어도 됩니다. 상대가 중요하지 않다는 거죠.

듣는 사람의 반응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마치 강연을 펼치듯이 내 뜻을 알리듯이.

이것이 말하기입니다.

 

반면, 대화하기Converse는, 마주 대하여 의견을 주고받는 소통방법입니다. 

의견을 주고받는 것은 상대와 나와의 조심스러운 더듬기에 가깝죠.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사물을 정확히 알기 위해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만지듯,

대화는 그 과정을 언어, 혹은 비언어적인 방법으로 수행하는 겁니다.

수단은 상관없으니 서로의 생각, 신념, 철학, 삶의 태도를..

알아가는 거죠.

 

대화에서 중요한 건 상호작용입니다. 

말하기와는 달리, 반드시 '나와 다른 존재'를 필요로 합니다.

말은 그냥 하면 됩니다. 제가 지금 방에서 소리 내며 '밥 맛있다!' 하면 그게 말이죠.

그러나, 그런 저를 보고 '말하고 있다'라고 하지 '대화하고 있다'라고 말하진 않습니다.

혼잣말은 그래서 '혼자대화'가 아니라, '혼잣말'이 된 겁니다.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서 '대화'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음, 신기하네요. 텔레파시를 배운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말하기】와 【대화하기】는 현격히 다른 기술입니다.

그에 따라서 요구되는 능력도 다르기 마련입니다.

마치 축구 선수에겐 발을 이용한 좋은 능력이 요구되지만,

농구 선수에겐 손을 정교하게 사용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것처럼요.

 

【말하기】의 능력은 평소 많이 들어온 그것입니다.

'또박또박하게' / '논리 정연하게' / '잘 들리는' / '간단하고 명확하게'

'화려한 언변' / '매력적인 어조' / '딱 듣기 좋은 목소리' 등등.

뭐 이런 거죠. 감이 오시나요?

 

하지만 【대화하기】는 좀 다른 능력을 씁니다.

바로 '잘 듣기' / '적절히 표현하기' / '상대에 맞추어 반응하기' / '공감하기' 같은 거죠.

아주 간단한 예시가 있습니다.

성대와 혀를 이용해 언어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A 씨가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뇌 손상과는 다릅니다.

정상적으로 사고하지만, 발음만 안 되는 거죠.

이 A 씨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을까요?

네, 당연히 됩니다. 수화를 이용하거나 글을 통해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요.

 

대화는 〔반응하며 듣기〕와 〔표현하기〕로 구성됩니다.

'말하기'가 없는 이유는, 굳이 말과 언어로만 대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미묘한 비언어적 표현이 너무 많습니다.

대화하는데, 상대가 어쩐지 팔짱을 끼고 몸을 뒤로 젖히며 묘하게 시큰둥해요.

말로 '이런 얘기하기 싫은데'라고 표현하는 대신, 그것을 몸으로 표현한 겁니다.

'나의 이야기'라는 자극에 대해 '불쾌함을' 표현하는 신체 언어'로 반응한 거죠.

 

굳이 말과 언어가 아니어도 스스로의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대화의 본질은 '공간을 나누어 가지는 것'이거든요.

 

'공간을 나누어 가지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캐치볼 할 때 서로의 공 점유율'로 표시해도 전혀 문제없죠.

중요한 건 점유율, 둘 사이의 %입니다.

'네가 이만큼 말했으니 나는 이제 이 정도 말하고 다시 돌려줄게.'

'내가 방금 대화의 공간을 이만큼 가졌으니, 네가 반응할 시간과 공간을 이만큼 줄게.'

표현하기 힘든 서로 간의 공간, 그 거리를 나누어 가지는 것.

〔반응하며 듣기〕를 통해 상대의 공간을 존중하고, 〔표현하기〕로 내 공간을 챙기는 것.

미묘한 땅따먹기와 줄타기가 대화입니다.

제가 그걸 못해서 친구한테 한소리 들었죠. 여전히 고맙습니다.

 

제가 직장 상사로써 부하직원에게 말할 시간도 주지 않고 속사포로 말을 쏟아낸다면?

아니면 친구의 반응을 보지 않고 제 할 말만 모조리 다 한다면요?

이렇게 제가 대화의 점유율 100%를 가진다면, 상대가 반응할 공간과 틈이 날까요?

 

안될 겁니다.

아주 조그만 공간과 틈에도 존중을 담아내는 성인군자들이 가끔 몇몇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런 사람이 주위에 많지는 않으니까요.

나를 이렇게 '감정 쓰레기통' 취급하고,

'신경 안 쓰고 마음껏 말해도 되는 상대'로 생각되는 게 가장 싫을 겁니다.

대화란 상대와의 합작품입니다. 나만 있어도, 너만 있어도 안되고 '우리'가 있어야 해요.

그걸 위해 상대에게 충분한 공간을 주고, 나에게도 충분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대화의 공간'에서 같이 살기 위해서요.

 

"말을 잘하는 것과 대화를 잘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주인공이 되고 싶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 이유는 지난번 리뷰, 다산의 마지막 질문에서 적어놓은 바가 있으니,

봐주시면 여러분도 개쩌는 지혜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알면 인생 바뀌는 레전드 지혜 - [다산의 마지막 질문]

다산 정약용이 내게 물었다. "님 왜 그렇게 사셈?" "삶을 바꿀 것인가, 아니면 계속 지금처럼 살 것인가?" - 349p 목차 즐기는 자 모드 스스로를 사랑해야 하는 개쩌는 이유 묻노니, 이유를 아는가?

book-cookie.tistory.com

 

흠흠. 아무튼, 스스로를 사랑하는 건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스스로만 사랑하는 건 안된다'는 겁니다.

나의 세계에서는 내가 주인공이지만, 상대의 세계에서는 상대방이 주인공입니다.

이런 차이를 망각하고 '나만 중요하다!'라고  외치는 건 참 공허한 일입니다.

 

대화는 상대와의 상호작용이라고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어라라? 그러면 그냥 내가 할 말 잠깐 하고, 상대 말 잠깐 들어주면 되는 건가요?

그럴 리 없죠! 대화란 조금 더 고차원적인 행위입니다.

 

상대의 말을 듣고, 적절한 반응을 상대가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표현하고,

나의 생각을 덧붙이며 상대의 반응과 마음을 확인한 후 적절히 말을 끝내고

상대에게 다시 말할 차례를 넘겨주는 일이죠. 

참 어렵습니다. 

 

대화를 특히 어려운 일로 만드는 요인은, 바로 '나와 상대가 다르다'는 점에 있습니다.

'나와 가까운 것'과 '나와 다른 것'이 있으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나와 가까운 것'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나와 다른 상대의 방식을 듣게 되면,

우리는 그 방식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 훈수를 두게 되죠.

아무리 옳은 말이어도 누군가에게 요청하지 않았던 조언을 듣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아주 쉬운 예시가 있습니다.

바로 '정치'죠.

제 블로그가 터질 수도 있으니 말을 조심해야겠군요.

 

정당에 관한 정치적 발언을 듣고 서로 정겹게 담소를 나누는 두 사람!

"귀공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렇게 여기는 게 맞지 않겠소?"

"본인의 생각은 다르오. 정당 논쟁은 이 시선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오."

 

정치적 이슈에 대해 열띤 담소를 나눈 후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그러고 보니 네가 옳아. 내가 틀렸어. 일깨워줘서 너무 고마워."

ㅎㅎㅎㅎ 그럴 리 없죠.

어떻게든 '내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 반박에 반박을 합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분명 이게 맞아! 이렇게 생각해 봐.'

하지만 이런 말을 듣는 상대가, 반박을 들었다고 해서 생각을 고쳐먹을까요?

ㅎㅎㅎㅎㅎ 역시 그럴 리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오며 쌓은 데이터는, 그보다 더한 충격과 코앞의 현실로만 깨지는 법입니다.

그렇게 깨진 생각은, 이만큼 깨졌고 배웠으니 다시 자신이 옳다는 생각으로 변하죠.

사람은 결국 평생 '자신이 옳다'는 환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강요하는 건 다른 문제가 되죠.

특히 대화에서는 큰 문제가 됩니다.

선獨善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홀로 독, 착할 선 자를 써서 '홀로 옳다'는 뜻이죠.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요... 아니, 당연히 그게 맞으니까요. 

누가 생각해도 이게 맞을 텐데. 그냥.. 당연히 이 방법이 맞지 않나요? 

남의 방식이고 뭐고 이게 제일 효율적인 게 맞는데. 내가 직접 배우고 깨달은 건데.

틀릴 리가 없잖아요. 그렇죠?

 

안타깝게도, '나한테 옳은 것'은 '나에게만' 옳습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나에게 옳은 모든 것이 너에게까지 옳을 수 없어요.

우연히 우리의 인식이 비슷해서, 대부분의 '옳음'을 공유한다고 해도..

'나'와 '너'가 구분되는 그 차이로 인해 우리는 모든 게 똑같지 않아요.

 

나의 방식은 나에게만 정답이에요. 다른 이에게는 다른 방식이 정답일 수 있는 겁니다.

삶에 대한 모든 과정과 그에 대한 결론이 똑같다면,

우리가 정말로 다른 사람일까요? 아닐 겁니다.

시작이 다르고 과정이 다르고 결론이 다르기에 우리는 다른 존재입니다.

 

서로 간의 그러한 차이를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차이를 무시하고, 그저 '나의 옳음'만 상대에게 강요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의 주인공이 될 거고, 교사와 선생의 자리를 얻겠죠. 

상대의 삶을 무시하고 내가 옳다고 주장한 대가로요.

그게 정말 '주인공'인지는 차치하고서 말이죠.

 

상대와의 본질적이고 내면적인 대화가 어렵다면, 한번 돌이켜보세요.

'내가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스스로의 삶에 있어 스스로가 옳은 건 당연합니다. 

근데 그렇다면, 상대방의 삶에서도 상대방이 옳은 게 당연합니다.

'내가 상대의 옳음을 인정하지 않고, 나만 옳다고 생각했었나?'

 

좋은 대화란 쉽게 말해서 머리를 깨는 대화입니다.

아무리 내가 잘 말하고, 상대를 이해하더라도 상대의 본질적인 '옳음'을 바꿀 수 없어요.

대화를 통해서 '상대'를 바꾸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대의 공간을 밀어내 버리겠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같이 살아야 대화지, 이것은 그냥 주입과 다를 게 없죠.

 

따라서 대화를 통한 목표는 '나 스스로의 인식을 확장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결국 '이게 옳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이것도 옳구나!'라고 세계를 넓히는 것이죠.

 

대화를 통해 상대가 무엇을 얻어갈지는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대화를 통해 무엇을 얻어갈지는 결정할 수 있죠.

뭐든지 남을 바꾸려고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가 바뀌어야 하는 법입니다.

 

"나 스스로 상대를 장악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상대와의 본질적인 대화가 어려운 겁니다."

 


투 머치 토커

 

모든 인간은 '투 머치 토커'입니다.

한마디로 말이 너무 많죠.

 

'말이 많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말하고 싶은 화제들을 죄다 꺼내 늘어놓는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친구들한테 죽고 못 사는 수다쟁이로 생각된다는 뜻일까요?

 

물론 필요한 상황에서 상대방이 어색하지 않게 화두를 이끌고,

그러면서도 나의 즐거움을 챙길 수 있다면 매우 좋은 능력이겠죠.

하지만 그렇다기엔... 필요치 않은 말도 가끔 합니다.

말을 안 해야 할 때도 말을 하고, 하면 안 될 말도 한 적이 있습니다.

 

단순히 피곤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생각을 덜 한 걸까요? 

'다음번엔 좀 더 숙고해서 말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지키기란 요원한 일입니다.

 

이렇게 '말'로 실수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왜 실수했는지 아주 명쾌히 들어맞을 수 있는 딱 하나의 정답이 있습니다.

평소에 너무 많은 말을 했다는 거죠.

자신의 능력과 한계 이상으로 대화했다는 겁니다.

 

음? 우리는 어떤 때라도 말할 수 있잖아요? 근데 어떻게 그게 능력을 벗어난 건가요?

정말 간단합니다.

'입 밖으로 나왔다고 모든 게 진짜 말은 아닙니다.'

 

반사적인 사고만 하여 단편적인 결론을 도출해 낸 것이 정말로 '진짜 말'일까요.

그것은 말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것 아닐까요?

이런 본능으로 말을 하기에, 우리는 여태껏 많은 실수를 저질러온 게 아닐까요?

이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사실 명쾌한 방법은 없습니다.

자자자자 잠시만요, 그렇다고 여기서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고심 끝에 2가지나 어떻게든 만들어왔거든요!

 

하나는 내면으로부터 변화하는 겁니다. 

이름하야, 〔사랑하기〕 방법입니다!

상대를 사랑하고. 진심으로 존중한다면 자연스럽게 날카로운 말이 줄어듭니다.

'사랑은 나 이외에도 세상에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라는 말이 있죠.

딱 그렇습니다.

어떤 말을 하려고 해도, '사랑'이란 필터를 거친다면 한 번 고와질 수밖에 없죠.

'이렇게 말하면 얘가 싫어하겠지? 음... 어떻게 말할까...'라고 생각하는 것.

이러한 모든 배려와 다정한 마음이 상대에게 사랑을 주는 일입니다.

 

무슨 배려와 다정을 보여야 하는지는 간단합니다. 

'스스로 받기 싫은 걸 상대에게 행하지 마라.'라는 황금률이죠.

그냥, 내가 듣기 싫은 말을 상대에게 안 하면 됩니다.

엄청 간단하죠?

 

예를 들어 잔소리가 있습니다. 

잔소리는 '내 입장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일'이죠.

아무리 옳고 좋은 말이어도 그걸 다시 말하고 다시 말하면, 나쁜 말이 됩니다.

학창 시절 어머니에게 다들 '공부하라'라는 말씀 한 번 들어본 적 있을 거예요.

우리가 그 소리를 좋아했나요?

아닐 겁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으로는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시키는 지시'이고,

매번 들었고 또 들었던 잔소리여서 뒤에 나올 말들이 예측되었기 때문이죠.

 

이렇듯 〔사랑하기〕 방법은 매우 효율적이고 자동적인 패시브 스킬이지만요.

사실 이 스킬은 그럴만한 동기를 갖추지 못했다면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남을 사랑하라... 남을 사랑하라...'라고 말해봤자,

그 스스로가 대체 왜 남을 사랑해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일까요.

또한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깊은 인문학적 / 철학적 / 사회관계적 숙고가 필요하죠. 

이 방법은 자신의 '본능'을 제련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그만큼 습득 난도가 높은 방법입니다.

 

나머지 하나의 방법은 간단합니다.

말하지 마세요.

그냥 입 꾹 닫고 최대한 말을 안 하면 됩니다.

 

...?

 

ㅎㅎㅎ 제가 드디어 미쳤나 생각하실까요?

아닙니다, 여러분. 이걸 보시면 이해하실 거예요.

 

이 방법의 이름은 〔말 아끼기〕입니다.

오잉? 아까 설명은 '말 안 하기'라면서, 왜 이름은 〔말 아끼기〕죠?

 

여러분. 우리가 돈을 아끼는 이유는 뭔가요?

나중에 노후에 필요할 때 쓰기 위해서입니다.

혹은 투자에 필요한 돈을 모으기 위해서일수도 있고요.

사고 싶은 물건을 위해 아끼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해하셨나요?

돈을 아끼는 이유는, 아낀 것을 활용하기 위함입니다.

지금 아껴서 나중에 내가 원할 때 적절히 소비하기 위해서죠.

 

다른 예시로 체력이 있습니다.

내일 42.195km 마라톤 대회가  있는 날인데,

오늘 10km 전력질주 러닝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 뛰면 내일 잘 못 뛰니까! 너무 당연하죠!

인간의 체력은 소모했으면 회복해야 하니까요.

오늘 안 뛰고 체력을 아끼고, 내일 마라톤에 그 체력을 넣어야 좋은 성과를 얻으니까요.

체력을 아껴서, 내일 원할 때 쓰는 거죠.

이제 감이 좀 오시죠?

 

인간의 인지력은 정해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신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모든 '력力'자가 붙는 것은 똑같습니다. 충전과 소모의 개념이에요.

돈을 쓰려면 충전해야죠. 전기를 쓰려면 충전해야죠.

체력을 쓰려면 음식을 먹고 잘 쉬어 충전해줘야 합니다.

정신력도 다르지 않습니다. 잘 쓰려면, 잘 충전해줘야 해요.

 

아무리 정신력이 막강해도 그것만으로는 1년 내내 잠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근력 운동을 한 후에는 무거운 물건을 들기 힘들듯이,

정신력도 똑같이 앞서 '이런저런 일'로 소모했다면 금방 회복되지 않습니다.

이럴 때 어느 정도 휴식이 필요해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은 일이 있습니다.

이걸 하면 또 다른 일, 그걸 끝내면 누구랑 약속, 그것도 하면 다시 일...

일의 반복은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정신력을 소모했다면, 당연히 대화를 위한 좋은 컨디션이 아닐 겁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우리의 정신력이 크게 깎여나갔는데,

훌륭하고 만족스러운 대화가 가능할까요?

 

대화할 기분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말할 기분 아닌데..'

이럴 때 억지로 대화하는 게 정말 좋은 선택일까요?

 

이건 마치.. 어제 등 야무지게 조지고 왔는데 오늘 턱걸이 20개를 바로 하는 경우죠.

당연히 어제 등을 잘 먹이고 왔기 때문에, 턱걸이가 힘들 겁니다.

당연히 위의 경우에서도 피곤하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쉽게 흔들리고,

말을 고를 능력이 떨어집니다.

이럴 때 대화하기 때문에 실수가 많아지는 겁니다.

 

정신력에 큰 소모가 있었을 때 대화하는 대신, 휴식하는 겁니다.

"미안한데, 기분이 별로라서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재미가 없네.

공평하지 않은 건 아는데, 혹시 조금만 이따 대화해도 될까?"

이렇게 정중하게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말과 대화의 홍수에서 빠져나오는 겁니다.

휴식하고, 다시 말짱해진 정신으로 대화한다면!

자신의 정신력을 쥐어짜내지 않아도 훌륭한 대화가 되겠죠?

 

요약하자면, 〔말 아끼기〕 방법은 이겁니다.

'내가 피곤하면 일단 대화에서 빠져나와라.'

'충분히 정신력을 회복한 다음에 대화해라.'

'정신력을 아끼고, 필요할 때 써라.'

 

인간의 정신력은 한계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자신의 정신력이 부족할 때는 말을 꺼내지 않는 것.

이걸 넘어서, 자신의 정신력의 한계를 알고 유동적으로 어디에 얼마만큼 쓸지 정하는 것!

이것이 본질입니다.

 

위의 〔사랑하기〕 방법은 자동적으로 사용되는 패시브 스킬이지만,

이 〔말 아끼기〕 방법은 의식적인 사용을 요하는 액티브 스킬입니다.

스스로 상태를 점검하고, 필요할 때 사용해야 하는 기술이지요.

방법은 2가지가 있지만, 꼭 하나만 쓰라는 법이 있습니까?

좀 많이 피곤하면 액티브 스킬을 쓰는 거고, 

상태 괜찮으면 패시브 스킬로 자동사냥 하는 거죠. 

꿩 먹고 알 먹고 해야죠!

 

"모든 인간은 '투 머치 토커'이다. 훌륭한 대화를 위해 말을 의식적으로 아낄 필요가 있다."

 


 

이번 책은 셀레스트 헤들리님의 [말센스]입니다.

말과 대화의 차이점에 대한 작가님의 견해가 인상깊었습니다.

또한 인간은 너무나 많은 대화를 하기 때문에,

대화의 총량을 조절해야 한다는 발상 역시 좋았습니다.

책의 내용은 '사람을 대하는 16가지 방법'을 소개하는 것에 가까우나,

이 리뷰는 그렇게 해야하는 이유와 저만의 견해에 대해 적었으니,

책도 읽고 리뷰도 읽어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얇은 책이라 금방 읽으실거에요 :)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손님들과 저를 위해 다정하게 책을 굽겠습니다.

- 제과점장 린곰 올림 -